물려준다는 것

2015.08.05 22:21 from 분류없음

얼마 전 친구가 엄마와 다툰 이야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아기가 쓰던 물건을 일언반구 말도 없이

친척네 집에 갖다주셔서 볼맨 소리를 했다가 엄마와 언쟁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 몸에 안 맞는 옷, 이제 더 이상은 쓰지 않는 육아용품들이었지만 허락도 없이 눈 앞에서 감쪽같이 없어졌다는 게 황당했고 친구의 엄마 입장에서는 미련을 두지 않아도 되는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 주었을 뿐인데 마음을 곱게 쓰지 못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친구의 표현으로는 그 친척은 몸과 마음이 먼 친척인데,

차라리 가까운 친구의 아이에게 물려주었다면 좋았을 것을, 괘씸하고 속상했다는 것이다.

 

누가 맞고 틀리다를 가리기 이전에 

엄마세대에는 물려준다는 개념이 단순히 물리적인 것이라면, 지금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에는 아이 키우기에 급급했다면

아이가 쓰던 물건이 아이만큼이나 하나하나 소중하고 더욱 예뻐보이는 것이 아마 요즘 엄마들일 것이다.

 

육아용품도 공부해야한다는 말이 있는 요즘

고르고 골라 가장 예쁜 것을 주고, 웹을 뒤지고 뒤져 해외직구까지 해가며 가장 싸게 사는 법을 고민하는 엄마들에게는

어쩌면 아기 숟가락 하나도 내 아이만큼이나 소중할지도.

 

생각해보면 나는 반대로 육아용품에 집착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런 나도 내 아이가 쓰던 물건을 누군가에게 그냥 휙 준다는 것은 망설여진다

처음 입었던 옷, 신발, 수저... 가장 좋아했던 장난감.

당연히 이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가도 간직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고

또 그냥 편하게 입었던 내복, 가제수건들, 양말, 신발, 그릇들... 정말 나중에는 고물상에 가져다주어야할 것같은 것들도

별로 친하지 않은 친척 누군가에게 그냥 훅 주게되지는 않을 것 같다.

 

내 아이가 쓰던 물건에는, 내 아이와 나의 영혼이 스쳐간 흔적이 있다고 할까?

그 냄새, 흔적, 역사를 잘 아는 사람에게 주어야 마음이 좀 놓인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친구의 어머니를 디스하는 건 아니고. ㅎ 뭐 무엇보다 좋은 마음으로 전달한 것이니까.

 

또 얼마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데,

자기 아기가 쓰던 물건을 친오빠에게 다 물려주었다가 시어머니에게 혼났다는 뭐 그런 내용.

시누이에게 안 주고 왜 오빠를 미리 주었느냐는.

이미 오빠에게 준지는 2년이 지났고, 당시 시누이는 결혼, 출산은 커녕 남자친구도 없었을 뿐더러

뭐 그게 아니라고 해도 왜 내 (아이)물건을 시댁이 간섭하는지, 침이라도 발라놨는지, 뭐 그런 아주 웃긴 내용.

 

그러고보니 우리나라에서 유독 물려준다는 개념이 강한 것 같은데,

나 혼자 정리하자면,

'물려준다'는 개념은 친형제, 자매들끼리만 씁시다.

그러니 친형제, 자매가 아닌 경우에는 무지하게 고마워하며 받아야하고 무조건 자기 것인양 내놓으라는 심보는 안됩니다

왜냐, 요즘에는 하다못해 쓰던 젖병도 되팔아서 돈으로 만들수 있으니까.

특히 육아용품은 중고거래가 무척이나 활발한 시장. 그러니, 친구이던 친척이던 뭐던지 간에

'어! 그럼 네가 쓰던 그거 나 주는거지? 우리 000 한테 물려줘라'

이런 말이 굉장히 실례라고 생각합시다.

안 물려주면 받는 것도 없이 되게 쪼잔한 사람되니까.

 

요즘엔 물건을 많이 한꺼번에 물려받으면 반대로 받은 사람이

상품권이나 아기 선물을 주는 문화도 조금씩 생겨나던데, 좀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쩌면 사려깊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결론은 기대하지도 말고 주면 감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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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피치 림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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